지난 2019년, 샤넬의 수장이었던 칼 라거펠트의 유언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크 드 바셰르와 내 뼛가루를 섞어서 뿌려달라." 칼 라거펠트는 결혼하지 않았고 유산을 남겨줄 가족은 반려묘 한 마리뿐이었기에, 자크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유명했지만, 자크에 대해서는 "내 인생에 반짝임을 가져다준 유일한 사람", "그를 사랑했지만 신체 접촉은 한 번도 없었다" 등 의미 깊은 발언을 남겼습니다. 독일에 소유한 저택 이름을 자크의 애칭인 '자코'로 지었을 만큼 애정이 깊었지요.
자크 드 바셰르는 1989년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사교계 인물입니다. 뛰어난 매너와 언변으로 많은 패션계 인물과 깊은 관계였다고 알려졌습니다. 그의 마음을 두고 칼 라거펠트와 이브 생로랑이 치열하게 경쟁했다는 일화도 유명하지요. 결과적으로 승자는 순애보를 간직한 칼 라거펠트였습니다. 그는 자크가 투병할 때 병실에서 함께 생활했고, 임종도 지켰습니다.
자크 드 바셰르의 전기를 쓴 작가 마리 오타비는, 자크 드 바셰르의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의 절반을 은밀한 곳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칼 라거펠트 역시 사후 화장했고, 유언에 따라 자크의 유골, 어머니의 유골과 함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란 이런게 아닐까요.
살바도르 달리와 갈라 디아코노바(본명 엘레나 디미트리예브나 디아코노바)는 50여 년간 해로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갈라를 처음 본 순간 그토록 찾아 헤맨 운명의 여신, 구원의 여인임을 확신했다"라고 말했죠. 달리는 갈라를 마치 어머니처럼 따르고 의지했습니다. 갈라를 못 만났다면,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중 절반은 탄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는 갈라의 매혹적인 모습을 그리고, 조각하고, 조형물로 승화시켰습니다. 물론 갈라의 헌신과 집념 역시 작품을 지속하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달리가 화실에 머무르는 동안 갈라는 그의 식사도, 잠자리도 챙기지 않았고, 달리가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감시(?)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로 성공한 달리, 그리고 예술가의 뮤즈 갈라, 두 사람은 성공가도를 달리며 80대까지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하지만 달리의 말년은 처연했습니다. 갈라는 살바도르 달리보다 5년 먼저, 87세에 생을 마쳤습니다. 갈라가 사라진 뒤 달리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달리는 모든 작업과 교류를 멈춘 채 은신하다가, 1989년 급성 폐렴으로 갈라를 뒤따라갔습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대명사처럼 꼭 붙어 등장하곤 합니다.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니까요. 두 사람이 만날 당시 클라라는 불과 9세였고, 슈만은 그보다 9살 많았습니다. 클라라는 어린 시절부터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국민 피아니스트'로 일찌감치 명성을 얻었지만, 그에 비하면 슈만은 가능성만 지닌 무명 작곡가였지요. 슈만은 클라라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에게 적극 구애했습니다. 클라라 역시 슈만에게 애정을 표현하며 연인이 되었고요. 클라라가 법적 성인이 된 해에, 두 사람은 법원에서 부모 허락 없이 결혼이 가능하다고 인정받습니다.
그 직후 슈만은 근사한 사랑곡 '미르텐'을 지어 클라라에게 선물했답니다. 미르텐은 우리말로 '은매화'입니다. 은매화는 결혼식에서 신부가 머리에 쓰는 화환 재료로, 여리여리한 순백 꽃잎과 하늘하늘한 수술이 아름답습니니다. 슈만은 미르텐 화환을 쓴 아름다운 신부 클라라를 상상하며 곡을 지었겠지요. 가사는 예찬으로 가득합니다. "그대는 나의 영혼, 나의 심장, 그대는 나의 기쁨, 나의 고통, 그대는 나의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살아간다네.(중략) 그대가 사랑으로 나를 높여주니 그대는 나의 선한 영혼이요. 나보다 더 소중한 이여."
두 사람에게 행복한 나날만 남았을 것 같지만, 사실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슈만은 우울증을 앓았고 환청과 환각 등 조현병을 겪으며, 점차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습니다. 클라라는 슈만 사이에서 낳은 여섯 아이를 챙기며 연주회와 레슨으로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고요. 그래도 클라라는 끝까지 슈만의 아내로 헌신했습니다. 클라라의 일기장에는 슈만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슈만의 곡을 연주하며 그의 숨결을 느끼고, 목소리를 들었다. 온몸이 그의 음악 속에 녹아내리는 듯하다."
여담으로, 우리에게는 슈만이 더 익숙하지만, 독일에서는 클라라의 인지도가 훨씬 높답니다.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 독일의 100마르크 지폐에 클라라의 얼굴이 새겨졌을 정도예요. 우리로 치면 신사임당급 인물이지요. 슈만의 뮤즈로 클라라가 꼽히는 만큼, 위대한 음악가인 클라라를 이야기할 때 그 뮤즈로 슈만이 등장하기도 한답니다.